김선필 ()

근대사
인물
개항기 지삼군부사, 대호군, 강화부유수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중필(仲弼)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07년(순조 7)
사망 연도
1883년(고종 20)
본관
안동(安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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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개항기 지삼군부사, 대호군, 강화부유수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중필(仲弼). 생부는 군수를 지낸 김정기(金鼎基)이며, 양부는 김학기(金學基)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29년(순조 29) 무과에 급제하여, 전라도·충청도의 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다. 고종 때에 들어와서는 흥선대원군의 신임을 받아 중용되었는데, 1866년 병인양요 때에는 통진부(通津府)에 진을 친 선봉장 이용희(李容熙)의 우익(右翼)으로 부평(富平)에 주둔하면서 수도방위를 담당했다.

경기중군(京畿中軍)을 거쳐, 1871년 신미양요 때 강화수로(江華水路)의 중요한 근거지인 광성진(廣城津)을 방어하다 미국군의 공격을 받아 장렬하게 전사한 진무중군(鎭撫中軍) 어재연(魚在淵)의 후임으로 진무사(鎭撫使)가 되어 중군(中軍)을 지휘하였다. 1882년 임오군란으로 복설(復設)된 삼군부(三軍府)의 지삼군부사(知三軍府事)를 거쳐 대호군(大護軍)에 이르렀다. 1882년 강화부유수(江華府留守)를 역임하기도 했다.

참고문헌

『고종실록(高宗實錄)』
『일성록(日省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등단록(登壇錄)』
『한국사』-최근세편-(이선근, 진단학회 편, 을유문화사,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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