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검열, 대교, 예빈시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듬해 검열 · 대교(待敎)를 거쳐 1625년 지평(持平), 1627년 수찬(修撰)이 되었다. 같은 해, 반정공신인 김류(金鎏)와 이귀의 대립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인천 유생 김원(金垣)이 김류 부자의 횡포를 비난하는 소를 올리자 이귀의 사위로서 그 상소의 배후인물로 지목되어 온성으로 유배당하였다.
1629년 해남으로 옮겼다가 이듬해 사면되었다. 1648년 김류가 죽은 다음 고산찰방(高山察訪)에 기용되었으나 요직에는 나가지 못하고 예빈시정(禮賓寺正)에 그쳤다. 1722년(경종 2) 경연관(經筵官) 이진유(李眞儒)에 의해서 어전에서 원통함이 밝혀졌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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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진사 급제 : 『만력43년을묘사마방목(萬曆四十三年乙卯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일산古602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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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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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온성 유배 : 『인조실록』 17권, 1627년(인조 5) 9월 9일. "김원의 상소가 실은 김설이 사주한 것임이 드러나 둘을 처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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