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설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검열, 대교, 예빈시정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순보(舜甫)
  • 정헌(靜軒)
인물/전통 인물
  • 본관상주(尙州)
  • 사망 연도1668년(현종 9)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예빈시정
  • 출생 연도1595년(선조 28)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일기
  • 최종수정 2026년 0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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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검열, 대교, 예빈시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순보(舜甫), 호는 정헌(靜軒). 김장수(金長琇)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홍(金洪)이고, 아버지는 대사헌 김덕함(金德諴)이며, 어머니는 이원성(李元誠)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15년(광해군 7)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623년(인조 1)에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검열 · 대교(待敎)를 거쳐 1625년 지평(持平), 1627년 수찬(修撰)이 되었다. 같은 해, 반정공신인 김류(金鎏)와 이귀의 대립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인천 유생 김원(金垣)이 김류 부자의 횡포를 비난하는 소를 올리자 이귀의 사위로서 그 상소의 배후인물로 지목되어 온성으로 유배당하였다.

1629년 해남으로 옮겼다가 이듬해 사면되었다. 1648년 김류가 죽은 다음 고산찰방(高山察訪)에 기용되었으나 요직에는 나가지 못하고 예빈시정(禮賓寺正)에 그쳤다. 1722년(경종 2) 경연관(經筵官) 이진유(李眞儒)에 의해서 어전에서 원통함이 밝혀졌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 주1

    : 진사 급제 : 『만력43년을묘사마방목(萬曆四十三年乙卯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일산古6024-95])

  • 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3

    : 온성 유배 : 『인조실록』 17권, 1627년(인조 5) 9월 9일. "김원의 상소가 실은 김설이 사주한 것임이 드러나 둘을 처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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