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김성엽(金成燁). 평안북도 선천 출신.
1914년 선천(宣川)의 신성중학(信聖中學) 3학년을 중퇴하고 1917년 가족과 같이 만주 봉천성(奉天省)으로 이주하였다.
1919년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환인현(桓仁縣) 환남지단(桓南支團)의 검찰원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하다 1920년 광복군사령부가 조직되자 이에 입단하여 국내특파원으로 임명되어 동지 최지관(崔志寬)·이정호(李貞浩)·이운봉(李運逢) 등과 같이 평안북도 의주(義州)와 구성(龜城) 등지에서 친일파 숙청, 군자금모금 및 국내 조직확대 등에 노력하였다.
1921년 평안북도 선천에서 활동하던 중 일본경찰에 잡혔다.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사형이 구형되었으나, 언도공판에서 무기징역형이 언도되었다. 신의주·평양·마포형무소로 전전하며 옥고를 치르다가 1932년 감형되어 출옥하였다.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