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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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원도찰방, 동복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이칭
  • 강숙(岡叔)
  • 서하(棲霞)
인물/전통 인물
  • 본관광산(光山)
  • 사망 연도1597년(선조 30)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제원도찰방|동복현감
  • 출생 연도1525년(중종 20)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해권 (고려대학교도서관,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서하당유고 미디어 정보

서하당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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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제원도찰방, 동복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강숙(岡叔), 호는 서하(棲霞). 아버지는 교위(校尉) 김홍익(金弘翼)이며, 어머니는 해주최씨(海州崔氏) 장사랑(將仕郞) 최한종(崔漢宗)의 딸이다. 김인후(金麟厚)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7세 때 아버지는 잃고 숙부에게 수학하여 1551년(명종 6) 향시(鄕試)에 일등하였으며, 정철(鄭澈)과 특계(特契)를 맺고 『근사록(近思錄)』·『주역(周易)』 등을 공부하였다. 1558년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1560년 침랑(寢郞)에 임명되었다.

1581년(선조 14) 제원도찰방(濟原道察訪)을 역임하였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복가관(同福假官) 및 동복현감(同福縣監)을 역임하면서 군량과 의병을 모으는데 큰 공을 세웠다. 1596년 조카 김덕령(金德齡)이 무고(誣告)로 옥사하자 세상과 인연을 끊고 은둔하고 말았다.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어머니를 업고 피난하던 중 성모산(聖母山)에서 왜병을 만나자 부인과 함께 몸으로 어머니를 보호하다 살해되었다.

그는 성리서(性理書)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였으나 시(詩)로도 이름이 높아 「식영정잡영(息影亭雜詠)」·「척서도(滌署圖)」 등은 세상에 유행하였다. 저서로는 『서하당유고(棲霞堂遺稿)』가 있다.

참고문헌

  • - 『국조방명록(國朝榜名錄)』

  • - 『광주읍지(光州邑誌)』

  • - 『서하당유고(棲霞堂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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