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시대 제원도찰방, 동복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81년(선조 14) 제원도찰방(濟原道察訪)을 역임하였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복가관(同福假官) 및 동복현감(同福縣監)을 역임하면서 군량과 의병을 모으는데 큰 공을 세웠다. 1596년 조카 김덕령(金德齡)이 무고(誣告)로 옥사하자 세상과 인연을 끊고 은둔하고 말았다.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어머니를 업고 피난하던 중 성모산(聖母山)에서 왜병을 만나자 부인과 함께 몸으로 어머니를 보호하다 살해되었다.
그는 성리서(性理書)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였으나 시(詩)로도 이름이 높아 「식영정잡영(息影亭雜詠)」·「척서도(滌署圖)」 등은 세상에 유행하였다. 저서로는 『서하당유고(棲霞堂遺稿)』가 있다.
참고문헌
- 『국조방명록(國朝榜名錄)』
- 『광주읍지(光州邑誌)』
- 『서하당유고(棲霞堂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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