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사간원정언, 홍문관수찬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34년 어사 박문수(朴文秀)와 이조판서 조현명(趙顯命)의 추천으로 다시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그 뒤 감진어사(監賑御史) 이종백(李宗白)의 추천으로 사과(司果)에 기용되어 사축서별제(司畜署別提)를 역임하였다. 또한 상소하여 치국평천하의 도를 건의하고 왕도정치를 행할 것을 촉구하였다.
1711년(숙종 37) 진사에 급제한 후, 1735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사헌부지평이 되었고, 이어서 사간원정언 · 홍문관수찬 등을 역임하였다. 1737년 이현일(李玄逸)의 신원소(伸寃疏)를 올렸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서 정의(旌義)에 유배되었다.
그 뒤 광양으로 이배되어 배소에서 죽었다. 문장가로 조정의 총애를 받았으며,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는데 이황(李滉)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지지하였다. 저서로는 『제산문집(霽山文集)』 16권이 있다.
참고문헌
- 『국조방목(國朝榜目)』
- 『제산문집(霽山文集)』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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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진사 급제 : 『신묘식년사마방목(辛卯式年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朝26-2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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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五(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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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이현일 신원소 : 『영조실록』 44권, 1737년(영조 13) 5월 22일. "이현일의 신구를 청한 김성탁을 국문하라 하다. 함경북도에 청인들이 범월하니 대책을 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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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김성탁 저술 : 『제산선생문집(霽山先生文集)』 (국립중앙도서관 810.819-김573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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