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전기에, 북로원수, 상서좌복야, 판공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148년(의종 2) 수문전학사(修文殿學士)가 되었고, 이어 이부상서(吏部尙書)가 되었다. 이듬해 삼사사(三司使)가 되었으며 1151년 정당문학(政堂文學), 그 이듬해 검교사도(檢校司徒)와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郎平章事)가 되었다.
1153년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동지공거(同知貢擧) 유석(劉錫)과 함께 곽원(郭元) 등 진사 30인과 명경(明經) 3인을 뽑았다.
1154년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판공부사(判工部事)가 되었다가 치사(致仕)했다. 동로병마사(東路兵馬使)를 세 번, 북로원수(北路元帥)를 한 번 역임하면서 잘 다스려 신망을 얻었으며, 일찍이 송나라와 신라의 의서(醫書)에서 기이하고 중요한 것을 뽑아 손수 편찬한 『제중입효방(濟衆立効方)』이 전한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김영석묘지(金永錫墓誌)」
- 한국금석문종합영상정보시스템(gsm.nricp.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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