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적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비서원승, 봉상사제조, 궁내부특진관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혜길(惠吉)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광산(光山)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60년(철종 1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민영 (인하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3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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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비서원승, 봉상사제조, 궁내부특진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혜길(惠吉). 한성부판윤과 형조판서 · 공조판서를 지낸 김구현(金九鉉)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80년(고종 17) 경과증광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86년에 홍문관박사가 되었고, 이듬해 시강원필선(侍講院弼善)을 거쳐 그 해 9월에는 이조정랑이 되었다. 1888년에는 성균관대사성이 되고 1891년에는 이조참의가 되었다.

1893년 지도(智島)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는 형을 받았다가 이듬해 풀려났다. 1899년에는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에 임명되고 칙임관 4등에 올랐으며, 규장각직학사(奎章閣直學士) · 비서원승(秘書院丞)을 거쳐 이듬해에 경효전제조(景孝殿提調)가 되었다. 1901년에는 장례원소경(掌禮院小卿) · 봉상사제조(奉常司提調)에 임명되었다. 그 해 11월에는 다시 봉상사제조(奉常司提調)에 임명되었다. 1899년부터 1902년에 이르기까지 궁내부특진관을 지냈다.

참고문헌

  • - 『고종실록(高宗實錄)』

  •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 『일성록(日省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 주1

    : 문과 급제 : 『국조방목(國朝榜目)』 卷之十二(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11655])

  • 주2

    : 저도에 위리안치 : 『고종실록』 30권, 1893년(고종 30) 11월 6일. "탐오한 관리인 윤병관, 홍시형, 김영적 등을 처벌하라고 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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