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천용(天用), 호는 경독재(耕讀齋). 경상북도 안동부 금계리(金溪里) 출생. 아버지는 김주진(金柱震)이며,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로 통덕랑(通德郎) 이규(李槼)의 딸이다. 이상정(李象靖)의 문인이다.
1751(영조 27)년 안동부사 윤광소(尹光紹)가 부내의 선비들을 모아 향교와 서원에서 글을 가르치고 한 달에 두 번 시험을 치루었는데 항상 장원에 뽑혔다. 1762년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관계에 나아갈 뜻을 포기하고 고향에 돌아와서 경독재를 지어 후진의 교육에 힘썼다.
6촌 이내의 자손들을 한 집에 모으고 재산을 모아 장공예(張公藝)의 9세동거를 실천에 옮기고, 『가례집유(家禮輯遺)』 9권을 편저하고 『주서강록(朱書講錄)』과 그의 조상인 김성일(金誠一)의 『학봉문집(鶴峯文集)』을 간행했다.
1783년(정조 7)에는 순찰사 이병모(李秉謨)의 요청에 따라 내각(內閣)에서 내려온 『경학강의(經學講義)』를 교정하기도 하였다. 성리학은 이황(李滉)의 이기이원론을 연구하여 실증하고자 노력하였으며, 저서로는 『경독재집(耕讀齋集)』 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