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석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개성유수, 한성부판윤,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귀래당(歸來堂)
  • 시호정목(貞穆)
  • 하경(夏卿)
인물/전통 인물
  • 본관상산(商山)
  • 사망 연도1691년(숙종 17)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형조판서
  • 출생 연도1625년(인조 3)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일기
  • 최종수정 2026년 03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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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개성유수, 한성부판윤,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상산(商山). 자는 하경(夏卿), 호는 귀래당(歸來堂). 김홍(金洪)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덕함(金德諴)고, 아버지는 수찬(修撰) 김설(金卨)이며, 어머니는 이귀(李貴)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51년(효종 2)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53년에는 정언(正言), 이듬해 지평(持平)이 되었다. 1658년 사서(司書), 1661년(현종 2) 헌납(獻納), 1664년 장령(掌令)을 역임하고, 이어서 집의(執義)를 거쳐 1672년 좌승지, 1675년 강원도관찰사를 지내고, 1677년 동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80년 황해도관찰사가 되었다.

1682년 도승지 · 예조참판 · 동지의금부사를 차례로 지내고, 1683년 경기도관찰사, 1684년 개성유수, 1686년 한성부판윤 · 형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어려서부터 시문을 잘하기로 이름났고, 당쟁을 염려하여 이를 극력 피하려 하였으며, 언행이 단정하였다. 시호는 정목(貞穆)이다.

참고문헌

  • - 『효종실록(孝宗實錄)』

  • - 『현종실록(顯宗實錄)』

  • - 『명곡집(明谷集)』

  • - 『약천집(藥泉集)』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 주1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一(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2

    : 청나라 행 : 『숙종실록』 6권, 1677년(숙종 3) 3월 18일. "사신 오정위·김우석 등이 연경에서 돌아와 청나라 사정을 아뢰다"

  • 주3

    : 시호 추증 : 『숙종실록』 23권, 1691년(숙종 17) 7월 11일. "전 판서 김우석의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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