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형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한성부판윤, 개성유수,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도상(道常)
기오당(寄傲堂)
시호
정혜(貞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16년(광해군 8)
사망 연도
1694년(숙종 20)
본관
광산(光山)
주요 관직
형조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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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한성부판윤, 개성유수,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도상(道常), 호는 기오당(寄傲堂). 김표(金彪)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위남(金偉男)이고, 아버지는 김헌(金憲)이며, 어머니는 남탁(南晫)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50년(효종 1)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이 되었다.

이어 1657년 정언(正言)이 되었으며, 1661년 헌납(獻納)·사간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집의(執義)·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 1669년 좌부승지, 이듬해 도승지를 지냈다. 그 뒤 1672년에 경기도관찰사가 되었고, 1674년 한성부판윤, 청나라 사신인 원접사(遠接使)가 되었다.

이어서 1687년(숙종 13)에는 개성유수, 1694년 형조판서를 거쳐 기로소에 들어갔다. 효성이 지극하여 계모를 정성껏 모셨고 예서에 능하여 숙종 때 보책(寶冊)을 자주 썼다. 저서로는 『옥산유고(玉山遺稿)』가 있다. 대구 용연사(龍淵寺)의 송파대사각민탑비(松坡大師覺敏塔碑)는 김우형의 글씨이다. 시호는 정혜(貞惠)이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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