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원

  • 역사
  • 인물
  • 남북국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김헌창의 난 당시의 장수.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완산주도독(完山州都督)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동수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김헌창의 난 당시의 장수.

생애 및 활동사항

811년(헌덕왕 3) 이찬(伊飡)으로 완산주도독(完山州都督)이 되었으며, 819년에 순천장군(順天將軍)으로 당나라의 운주절도사(鄆州節度使) 이사도(李師道)의 반란토평을 위한 당나라 헌종(憲宗)과 양주절도사(楊州節度使) 조공(趙恭)의 요청에 응해 3만의 원군을 이끌고 가서 도왔다.

다시 822년 웅천주도독 김헌창(金憲昌)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잡찬(迊飡)으로서 김균정(金均貞)·김우징(金祐徵)과 함께 3군을 이끌고, 성산(星山)싸움에서 반란군의 지대(支隊)를 격파하고 웅천(熊川)을 함락시켜 난을 토평하는 데 공을 세웠다.

김웅원을 김유신(金庾信)의 후손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김해김씨 삼현파보(金海金氏三賢派譜)』에 김유신의 후손으로 그의 행록을 지은 장청(長淸)의 아들로 김웅원이 기록되어 있음을 근거로 그렇게 보기도 한다.

만약 김웅원을 김유신의 후손으로 본다면, 통일전쟁 이후 한때 몰락하였던 김유신의 가계를 다시 부흥시키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한 인물이 되는 셈이다.

참고문헌

  • - 『삼국사기(三國史記)』

  • - 『동국통감(東國通鑑)』

  • - 『김해김씨삼현파보(金海金氏三賢派譜)』

  • - 「신라(新羅) 헌덕(憲德)·흥덕왕대(興德王代)의 개혁정치(改革政治)」(김동수, 『한국사연구(韓國史硏究)』 39, 1982)

  • - 「신라(新羅) 신인종(神印宗)의 연구(硏究)」(문명대, 『진단학보(震檀學報)』 41, 1976)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