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의주 출신. 1919년 4월 1일 의주군 수진면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4월 1일 백원억(白元億)·장기덕(張基德) 등과 함께 만세운동을 주동하였으며, 운천동(雲川洞) 동장으로서 헌병주재소장과 개인적인 친분을 맺고 위세를 부리며 일제에 협조하던 주계주(朱桂柱)의 가옥을 소각하였다.
다시 4월 2일 수진면사무소 부근에서 2,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출동한 일본헌병에게 검거되었다. 평양지방법원에서 10년형을 언도받고 평양복심법원에 공소하였으나 기각되어 상고했으며, 1919년 9월 25일 경성고등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면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