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김이직(金利稷). 평안남도 용강군 출신.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당시 독립운동 근거지의 하나인 러시아 연해주(沿海州) 니콜라예프스크로 망명하였다.
니콜라예프스크에 정착한 후 세브란스의학전문출신인 나성오(羅成五) 등을 초빙하여 동포들의 보건을 위한 자선사업을 실천하였다.
군자금 모금과 무기입수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이를 뒷받침해준 사람이 최재형(崔在亨)이었다. 또한, 니콜라예프스크재류 한인민단(韓人民團)의 초대단장을 역임하면서 교육구제사업에 힘을 다하는 한편, 민족사상고취에도 진력하였다.
시베리아에 출병한 일본군이 1920년 4월 4일 밤부터 5일 새벽까지 연해주 지역에서 항일운동세력에 대한 공격을 가하면서 최재형·엄주필(嚴柱弼)·황경섭(黃景燮) 등과 함께 체포되어 총살되었다.
1963년 대통령표창이, 1977년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