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도(淸道). 자는 자익(子翼), 호는 직재(直齋). 아버지는 김구옹(金龜翁)이며, 어머니는 고성이씨로 이시린(李時麟)의 딸이다. 하양현(河陽縣)에서 출생하였으며, 유치명(柳致明)의 문인으로 1806년(순조 6) 안동향시(安東鄕試)에 급제하였다.
1812년 홍경래(洪景來)의 난이 일어나자 모두 피난하기에 분주하였지만, 김익동은 동요하지 않고 오직 학업에만 열중하여 1819년 사마시에 급제하였고, 이듬 해에 정시(庭試)에 응시하였으나 실패하자 과거를 단념하고, 노은정사(老隱精舍)·구연정(龜淵亭) 등을 설립하여 후진양성에 전력하였다.
한 때 고을의 장학임무(奬學任務)를 수행하였는데, 『소학』의 가르침을 인재육성의 기본지침으로 삼고 풍속을 교화하는 방법으로 향약(鄕約)의 규정을 제시하였다. 한편, 배극소(裵克紹)와 함께 고금의 상제의(喪祭儀)를 채집하여 『상제의집록(喪祭儀輯錄)』 4책을 편집하였으며, 저서로는 『직재문집(直齋文集)』 6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