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개항기 임오군란 당시의 주모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러나 7월 13일 흥선대원군이 청나라 군사에 의해 피납되고 군란은 실패하였다. 군란 주모자로서 정의길·강명준·유복만·홍천석(洪千石) 등과 함께 체포되어 포도청에 수감되었다.
8월 23·24일 양일간에 있었던 금위영(禁衛營)의 추고(推考)에서 발통수창(發通首唱: 통문을 발송하는 일을 우두머리가 되어 주창하는 것)의 동기가 아들을 구하고자 함에 있었음을 밝혔다.
그러나, 대궐을 침범하였다고 주장한 자의 지출(指出)을 끝내 거부하면서 마침내 군란의 주동자였음을 시인하였다. 모반대역부도(謀反大逆不道)로 결안(結案)되어 8월 25일 군기시(軍器寺) 앞에서 능지처사(陵遲處死)되었다.
참고문헌
- 『임오대역불도죄인장손등국안(壬午大逆不道罪人長孫等鞫案)』
- 『종정년표』(어윤중, 탐구당, 1971)
- 『고종시대사』(국사편찬위원회, 탐구당, 1970)
- 「임오군변」(권석봉, 『한국사』 16, 국사편찬위원회,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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