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우 ()

서상우 글씨
서상우 글씨
근대사
인물
개항기 때, 홍문관교리 · 참의교섭통상사무 · 성균관대사성 · 의정부좌참찬 · 공조판서 등을 엮임한 문신.
이칭
은경(殷卿)
규정(圭廷)
시호
문헌(文憲)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31년(순조 31)
사망 연도
1903년(고종 40)
본관
달성(達成)
관련 사건
조미수호통상조약
정의
개항기 때, 홍문관교리 · 참의교섭통상사무 · 성균관대사성 · 의정부좌참찬 · 공조판서 등을 엮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달성(達成). 자는 은경(殷卿), 호는 규정(圭廷). 서경순(徐慶淳)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82년(고종 19) 통리기무아문부주사(統理機務衙門副主事)로 조미수호통상조약과 이듬해 조영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할 때 종사관으로 참여하였다.

1882년 12월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1883년 홍문관교리로 임명되어 인천 개항장의 조계획정(租界劃定)에 참여하였다. 11월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임명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1884년 갑신정변 직후 참의교섭통상사무(參議交涉通商事務)에 임명되었다.

곧이어 예조참판에 임명되어 전권대신으로 일본에 파견되어 김옥균(金玉均) 등 개화파 인사들의 송환을 교섭했으나 실패하였다. 1885년 서리독판교섭통상사무(署理督辦交涉通商事務)·호조참판·이조참판 등에 임명되었으며, 동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귀국 후 성균관대사성이 되었고, 조이수호통상조약(朝伊修好通商條約)의 비준, 교환을 주관하였다. 1886년 협판교섭통상사무(協辦交涉通商事務)로 톈진[天津]에 파견되어 북양대신(北洋大臣) 이홍장(李鴻章)에게 제1차 조러밀약사건(第一次朝露密約事件)을 설명하였다.

귀국한 뒤 공조판서로 임명되었으나, 곧이어 진하겸동지정사(陳賀兼冬至正使)로 임명되어 또다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87년 독판교섭통상사무(督辦交涉通商事務)·한성부판윤을 거쳐 1888년 사헌부대사헌·형조판서에 이르렀다. 1890년 의정부좌참찬, 1893년 공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894년 김홍집내각(金弘集內閣)의 내무대신이 되었고, 이듬해 중추원의 일등의관(一等議官)에 임명되었다. 1897년부터 1900년까지 사직서제조(社稷署提調)·평안북도관찰사·태의원경(太醫院卿)·궁내부특진관(宮內府特進官)·장례원경(掌禮院卿)·홍문관학사 등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참고문헌

『고종실록(高宗實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음청사(陰晴史)』
『고종시대사』2∼5(국사편찬위원회, 1970∼1971)
관련 미디어 (1)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