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훈(金奏勳)’이라고도 하며, 관등은 살찬(薩飡: 沙飡의 이칭)이었다.
726년(성덕왕 25) 5월에 일본에 도착하여 6월에 공물을 바쳤으며, 다음날 조당(朝堂: 朝廷이라고도 하며 왕의 즉위·조하 등의 행사를 하는 공간)에서 향응을 받았다.
7월에 김조근일행이 귀국할 때 국서를 받았는데, 이찬(伊飡) 김순정(金順貞)이 일본과의 국교를 우호적으로 유지하는 데 공로가 컸다는 것을 밝히고 김순정의 죽음을 슬퍼하며, 또한 그의 넋을 달래기 위하여 황시(黃絁: 명주) 100필과 비단 100둔(屯)을 주었다는 내용이다.
김조근 일행은 그의 죽음을 일본에 알리는 고상사(告喪使)의 성격을 가졌던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