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시야(是也). 충청남도 홍성 출신.
1919년 3·1운동 때 홍성군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고, 1920년 북만주로 망명하여 동지들의 무기를 국내에 반입하려다가 실패하였다.
그 해 가을 다시 북경으로 망명하여 이세영(李世榮)·이회영(李會榮)·조성환(曺成煥) 등과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1년 윈난성(雲南省) 군관학교에 입학하여 4년간 군사훈련을 받았다.
1927년 신민부(新民府)가 군정파와 민정파로 분화될 때 김좌진(金佐鎭)과 함께 군정파에 속해 보안 제5대대장을 맡았다. 1929년 7월 재만동포의 자치기구인 한족총연합회(韓族總聯合會)를 조직하여 조직 선전 농무부 위원장을 맡았다.
1930년 북경에서 개최된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대회에 북만주대표로 참가하였다. 1931년 중동선(中東線) 해림역(海林驛) 부근에서 공산당원에게 암살되었다.
1968년에 대통령표창이, 1977년에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각각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