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출생. 부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27부터 1932년까지 동양척식주식회사에서 근무하였다. 광복 직후 1946년 조선견직한국생사(朝鮮絹織韓國生絲)를 창립하여, 1967년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사, 생사수출조합 이사장, 1970년 한국생사회 회장을 역임하기까지 한국견직물업계에 기여한 바가 크다.
또한, 1952년삼화(三和)고무를 창업하여 대기업의 기초를 다지면서 1972년 삼화고무회장직에 올랐다. 1973년대한판지(大韓板紙)를 창업하고 동방증권을 인수하면서 한국실업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였는데,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실업계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은탑 및 석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한편, 언론계에도 관여하여 1948년 부산일보사 사장, 1958년 한국문화방송·부산문화방송 사장으로 활동한 바도 있으며, 실업계와 언론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바탕으로 1950년 제2대 민의원선거 때 부산갑구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5·16군사혁명 이후 부정축재자로 구속된 상태에서 부산일보, 부산문화방송, 부일장학회를 5ㆍ16장학회에 기탁하였다. 뒷날 후손들이 반환소송을 제기하였으나, 공소시효 소멸로 패소하였다.
당선 뒤에는 자유당에 입당하였고, 1964년 제3대민의원선거에서도 자유당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는 삼화플라스틱·자명(子明)해외건설회사 등과 기존의 업체를 통합하여 1979년 삼화그룹을 형성하여 그 회장에 취임하였고, 1980년 명예회장직을 맡아 사업일선에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