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3월 블라디보스톡에서 개최된 한인사회당 대회에 참가하여 의사회장을 맡았다. 10월 치타에서 러시아공산당 극동국 한인부 설립에 참여 집행위원이 되었다.
1921년 1월에 아무르주에 결집한 무장부대를 통합하기 위한 전한임시군사위원회를 결성하고 위원이 되었으나 4월에 이르쿠츠크파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고 극동공화국 총사령부에 의하여 체포되어 이르쿠츠크로 압송되었다.
이어서 5월 이르쿠츠크파가 조직한 임시고려혁명군사법원에 의하여 반혁명분자로 투옥되었으나 1922년 4월 코민테른 조선문제결정서에 의하여 석방된 후 시베리아에서 활동을 재개하였다.
1922년 베르흐네우딘스크 고려공산당 연합대회에 참가하여 중앙간부로 선임되었다. 1923년 5월에는 적기단 활동에 가담하여 만주 안도현에서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