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4월 한인사회당이 창당될 시의 창설 회원이었다. 1919년 4월 한인사회당 2차대회에 참가하여 박진순·박애와 더불어 대표단의 일원이 되었다.
1920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코민테른 제2차대회에 참가하였으며 그해 가을 상해로 가서 이동휘·김립등과 함께 한인사회당을 공산당으로 변경하고 중앙위원으로 선발되었다. 1921년 봄 흑하사변 직전에 이동휘의 입장을 지지하고 상해파의 입장에 섰다.
자유시 사변 당시 러시아공산당 극동국 한인부에 속하여 활동하였으나 이르쿠츠크파가 조직한 코민테른 한인부에 의하여 해체당하고 말았다. 이루크츠크파에 의하여 “민족-쇼비니즘”을 가진 자로 지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