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김필보(金弼堡), 호는 소아(素我). 평안남도 덕천 출신.
1918년 만주 하얼빈[哈爾濱]에서 한국인 2세 원(元)가이와 상의, 제1차세계대전에 참전한 한국인 2세 400여 명을 모아, 하얼빈의 러시아군 사령관 호리랏트와 교섭하여 이들을 표면적으로는 동청철도(東靑鐵道) 수비를 담당하게 하면서 실제로는 독립군으로 양성하였다.
1919년 신영삼(申榮三)·조맹선(趙孟善) 등과 함께 대한독립단을 조직하였다.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락을 취하다가 12월 일본경찰에 붙잡혀 서울로 이송, 2개월간 악형과 고문을 받다가 유동열·양기탁(梁起鐸)의 노력으로 석방되었다.
1920년 전라남도 광양지방의 부호들로부터 군자금으로 6만 7000원을 모금하여 신태현(申泰鉉)·양기탁 등에게 전달하고, 미국 의원단이 한국을 방문할 때 살포하기 위해 전단(傳單) 1,000여 매를 만들었다.
같은 해 8월 전주군 고산면의 부호 고갑준의 아들 고정식(高貞植)을 비롯해 이순명(李順明)·김한규(金漢奎) 등과 함께 고갑준을 위협하여 현금 9,600원을 군자금으로 받아 상경하였다가, 종로경찰서의 예비검속에 걸려 10년 징역형을 언도받고 6년 8개월 동안 복역하였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