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오상세(吳祥世), 호는 청호(淸湖).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의 장교로서 만주 왕청현 십리평(汪淸縣十里坪)에 설치된 속성사관양성소인 사관연성소(士官練成所)에서 교관으로 일하다가 1920년 10월 청산리전투 당시 제4중대장으로 참전하여 커다란 공을 세웠다.
각 독립군부대가 연합하여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이 결성될 때 중대장 자격으로 참가하여 러시아로 건너갔다가 1922년 자유시참변을 겪고 만주로 귀환하였다.
1925년 김좌진(金佐鎭)·김혁(金赫)·조성환(曺成煥) 등이 신민부(新民府)를 결성할 때 제2대대장으로 선임되었다. 또한, 신민부에서 설립한 성동사관학교(城東士官學校) 교관으로 독립군양성에 진력하였다.
그 뒤 길림성(吉林省) 육군사관학교 학생단장, 대한독립군단 위원, 신민부경호대장 등을 지냈으며,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강국모(姜國模)·권호범(權豪範) 등과 동녕현 삼분구(東寧縣三盆溝)에서 만주구국총사령관(滿洲救國總司令官) 이두(李杜)의 지원을 받아 1932년 자원출전자들을 소집하여 대한구국의용대(大韓救國義勇隊)를 결성하였다.
1936년대한혁명당(大韓革命黨)이라 개칭하고 중앙위원에 취임하였으며 길림성자위군(吉林省自衛軍) 대대장으로 활동하던 중 밀산현(密山縣)에서 병사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