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진태(震台). 황해도 송화 출신. 1907년 이진룡(李鎭龍) 의병부대에 참가하였으며, 1919년 3·1운동에 가담한 뒤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독립단에 입단, 같은해 9월 관전현 북구(寬甸縣北溝)에서 일본경찰 2명을 사살하고 1920년 송화로 돌아와 독립의용대를 조직하였다.
그 뒤 손일민(孫一民)의 소개로 길림에서 폭탄 1상자와 권총 등을 구입하여 이명서(李明瑞) 등에게 분급하고 황해도일대에서 이화익(李化翼) 등과 독립군자금모금에 힘쓰다가 일본경찰에 알려져 상해로 망명하였다.
1922년 2월에 조직된 서간도 일대의 독립운동 통일기관인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가 분열되고,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재조직되자 다시 만주로 돌아와 변창근(邊昌根)과 대한광복단 대표자격으로 이에 참여하였다.
1925년 7월 국내에 돌아와 함경도·평안도에서 독립군자금을 모금한 뒤 희천 명문동주재소를 습격하여 일본경찰 1명을 사살하고 장총 11정과 엽총 2정, 군도 11정 등을 노획하고 만주로 철수하였다.
1931년 한중항일동맹회를 조직하고, 1940년 임시정부 지시에 따라 만주지구 광복군 조직에 노력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