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선

  • 역사
  • 인물
  • 개항기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때, 의병으로 활동하다가 만주에서 독립의용대를 조직하였고, 대한통의부 등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의병·독립운동가.
이칭
  • 이칭진태(震台)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89년(고종 26)
  • 출생지황해도 송화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변승웅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의병으로 활동하다가 만주에서 독립의용대를 조직하였고, 대한통의부 등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의병·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일명 진태(震台). 황해도 송화 출신. 1907년 이진룡(李鎭龍) 의병부대에 참가하였으며, 1919년 3·1운동에 가담한 뒤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독립단에 입단, 같은해 9월 관전현 북구(寬甸縣北溝)에서 일본경찰 2명을 사살하고 1920년 송화로 돌아와 독립의용대를 조직하였다.

그 뒤 손일민(孫一民)의 소개로 길림에서 폭탄 1상자와 권총 등을 구입하여 이명서(李明瑞) 등에게 분급하고 황해도일대에서 이화익(李化翼) 등과 독립군자금모금에 힘쓰다가 일본경찰에 알려져 상해로 망명하였다.

1922년 2월에 조직된 서간도 일대의 독립운동 통일기관인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가 분열되고,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재조직되자 다시 만주로 돌아와 변창근(邊昌根)과 대한광복단 대표자격으로 이에 참여하였다.

1925년 7월 국내에 돌아와 함경도·평안도에서 독립군자금을 모금한 뒤 희천 명문동주재소를 습격하여 일본경찰 1명을 사살하고 장총 11정과 엽총 2정, 군도 11정 등을 노획하고 만주로 철수하였다.

1931년 한중항일동맹회를 조직하고, 1940년 임시정부 지시에 따라 만주지구 광복군 조직에 노력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독립유공자공훈록』4(국가보훈처, 1987)

  • - 『독립운동사자료집』5·12(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1977)

  • - 『독립운동사』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69)

  • - 『한국독립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