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은 김택기(金澤基), 가명은 왕운기(王雲起). 황해도 곡산 출신. 김정일(金正一)의 아들이다.
1920년 부친 김정일(金正一)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유하현(柳河縣) 동창학교(東昌學校)를 졸업하였다.
1932년 6월 국민부(國民府)에 가입하였다. 국민부 제2중대 참사로 무송(撫松), 안도(安圖), 신빈(新濱), 통화(通化), 집안(輯安)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1934년 집안현에서 김창화(金昌化), 김병하(金炳河), 강성채(姜成彩), 정종준(鄭宗俊), 김승호(金承浩), 이봉영(李峯英) 등과 함께 밀정 김용환(金龍奐)을 처단한 사건으로 체포되었다.
1935년 7월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살인 등 7개의 죄명으로 무기징역을 받았다. 동년 9월 평양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출옥하여 1946년 초 부모를 찾아 길림성(吉林省) 통화현(通化縣)으로 돌아갔다가 심양(沈陽)에서 병사하였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