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봉산구읍에서 태어나 서당에서 수학하고, 7세 때부터 애기탈을 놀았고, 이윤화(李潤華 : 취발이 · 첫목중의 명연희자)와 박천만(朴千萬 : 목중 · 마부역)에게서 탈춤을 배웠다.
첫목중과 노장춤을 잘 추었는데, 키가 훤칠해서 첫목중과 노장춤은 잘 어울리는 명무(名舞)였다. 직업은 이발사였고, 1920년대에 모든 행정기관이 사리원으로 옮겨가자 그곳에서 탈춤을 추었다.
광복 후 월남하여 서울에서 살았고, 1958년에는 직접 가면을 만들고, 봉산출신자들을 모아 탈춤을 가르쳐서, 건국10주년기념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여 광복 후 처음으로 일반에게 <봉산탈춤>을 선보였다. 그뒤에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연기상과 공로상 등을 받았다.
1967년에 <봉산탈춤>이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될 때 첫목중과 노장역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두 딸도 <봉산탈춤>을 추었다. 월남 후 젊은 세대들에게 탈춤을 가르쳐, 오늘날 <봉산탈춤>이 보급되게 한 공로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