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김진준(金鎭俊). 평양 출신.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였으며, 상해로부터 『독립신문』과 『신한청년보』를 입수하여 국내에 유포하는 데 힘썼다. 또한, 김한진(金漢鎭)·박제택(朴齊澤) 등과 독립청년단을 조직하였다.
1920년 3월 조창룡(趙昌龍)과 함께 성천군(成川郡)의 친일 앞잡이인 금융조합 이사를 사살하였다. 1922년 4월 대한광복군 내무부 기밀과장으로 있으면서 수만원의 군자금을 모아 임시정부로 보내고, 상해로 망명하다가 체포되었다.
평양복심법원에서 10년형을 언도받고 평양과 마포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1928년에 출감하였다.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