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흥업단 재무부장, 국민부 중앙집행위원, 조선혁명당 중앙위원 등을 역임한 대종교인 · 독립운동가.
이칭
중파(中波)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0년(고종 27)
사망 연도
1962년
본관
장연(長淵)
출생지
평안북도 선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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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흥업단 재무부장, 국민부 중앙집행위원, 조선혁명당 중앙위원 등을 역임한 대종교인 ·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장연(長淵). 호는 중파(中波). 평안북도 선천 출신.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12년 김규환(金奎煥) 등과 같이 만주로 망명하여, 환인현(桓仁縣)의 동창학교(東昌學校)에서 후진을 양성하였다. 1919년 무송현(撫松縣)에서 흥업단(興業團)에 가입하여 재무부장으로 활약하였고, 1921년에는 통화현(通化縣)에서 한인촌을 만들고 배달학교(培達學校)를 창설하였다.

1923년부터 2년간 정의부(正義府)의 통화지방 총관(通化地方總管) 및 중앙집행위원으로 활약했으며, 1925년에는 국민부(國民府)의 중앙집행위원이 되어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9년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의 중앙위원이 되어 남만주의 항일독립운동을 이끌어갔다. 한편, 대종교의 참교(參敎)와 지교(知敎)를 지내기도 하였다. 광복 후 귀국하여 부산 대종교의 전무가 되었다.

상훈과 추모

1963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독립운동사』 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한국독립운동사』 3(국사편찬위원회, 1967)
집필자
김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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