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근

  • 역사
  • 인물
  • 대한제국기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때, 병인의용대에서 일본 주요기관 파괴 , 밀정 처단 활동 등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37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901년(고종 38)
  • 출생지서울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신재홍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병인의용대에서 일본 주요기관 파괴 , 밀정 처단 활동 등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서울 출신. 명신학교(明新學校) 재학중에 아버지가 죽자 중퇴하고, 이왕직의 양악대원(洋樂隊員)이 되었다.

1921년 양악대가 해산되자 경성전기주식회사 전차차장·인쇄직공·점원 등에 종사하다가, 1923년 조선연예단의 악장이 되어 전국순회공연을 하였다. 1925년 만주 안동에서 순회공연중 연예단을 탈퇴하여, 상해로 가서 삼일공학교(三一公學校)의 음악교사가 되었다.

1926년에 대한민국임시정부 경무부장 나창헌(羅昌憲)이 조직한 독립운동단체인 병인의용대(丙寅義勇隊)에 입단하여 일제의 밀정으로 암약하는 한국인을 제거하는 한편, 일본의 주요기관 파괴와 요인암살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해 4월 8일 상해 주재 일본총영사관에 폭탄을 던져 폭파하였으며, 1935년 김구(金九)를 암살하려고 계획하는 일본경찰의 밀정인 이태서(李泰瑞)를 암살하였다.

1936년 항일테러단체인 맹호단(猛虎團)에 입단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붙잡혀, 해주지방법원·평양복심법원·경성고등법원에서 사형이 언도되어 1937년에 평양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김후경·신재홍, 한국민족운동연구소,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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