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해주 출신. 1919년 3월 1일 해주 남본정(南本町) 예수교회에서 목사 오현경(吳玄卿)의 주도로 최명현(崔明鉉)·이동혁(李東赫)·임용하(林容夏) 등과 3·1운동에 대하여 협의하고, 교회에서 교인 170여 명과 독립선언서 낭독 및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때 관공서에 독립선언서를 보내주다가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그 해 해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위반 혐의로 징역 1년 8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징역 8개월로 감형, 석방되었다.
1920년 3월 남만주의 조선독립단 특파원 고두환(高斗煥)·김기한(金起漢)의 지령에 따라 조선독립단에 가입하여 황해도 지부를 조직하고 임원으로 뽑혀 동지규합과 군자금 모집, 특파원 원조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해 8월 15일에 특파부대가 친일파 은율군수를 사살한 사건에 관련되어 다시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그달 19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83년에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