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0년(충혜왕 즉위년)에 지인방(知印房)이 설치되자 전첨(典籤)으로 삼사우윤 윤지현(尹之賢), 기거주(起居注) 이담(李湛) 등과 함께 그 임무를 맡았다. 1361년에 공민왕이 홍건적의 침입으로 복주(福州: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로 피난할 때 호종하였다.
1363년에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로 흥왕사(興王寺) 행궁(行宮) 때, 찬성사 김용 등 50여명이 침범하여 환관 안도치(安都赤), 첨의평리(僉議評理) 왕자(王梓) 등과 함께 피살당하였다. 난이 평정된 뒤 호종공신(扈從功臣) 2등에 추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