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 ()

경암실기(권1) / 일선회고
경암실기(권1) / 일선회고
유교
인물
조선시대 성균관박사, 사헌부감찰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이칭
거원(巨源)
경암(敬菴)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78년(선조 11)
사망 연도
1641년(인조 19)
본관
안동(安東)
출생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
주요 관직
성균관박사|사헌부감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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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성균관박사, 사헌부감찰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거원(巨源), 호는 경암(敬菴). 경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 출신. 아버지는 김사정(金士貞)이며, 어머니는 한양조씨(漢陽趙氏)로 진사 조희로(趙希老)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5세의 소년으로 아버지를 따라 의병에 가담하여 진주 김성일(金誠一)의 진중에서 활약하였다. 1602년(선조 35) 향시에, 이듬 해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606년 성균관에 들어가서 학문을 익혀 1612년(광해군 4) 명경과에 급제, 정자가 되었다.

그 뒤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양현고봉사(養賢庫奉事)·의정부사록(議政府司錄)·성균관학정(成均館學正)·봉상시부봉사(奉常寺副奉事)·성균관박사·양현고직장 등을 역임하였다.

1615년 인목대비(仁穆大妃)와 영창대군(永昌大君)에게 화가 미치자 벼슬을 버리고 귀향하였다. 1617년 성균관전적, 이듬 해 형조좌랑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그 해 가을 서장관으로 발탁되어 사헌부감찰의 직책으로 명나라에 갔다가 이듬 해에 돌아왔다. 벼슬에서 물러난 뒤에는 정암서당(鼎巖書堂)을 지어 후진교육에 힘썼다. 저서로는 『경암실기(敬菴實記)』 3권 1책이 있다.

참고문헌

『경암실기(敬菴實記)』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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