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용환 ()

나용환
나용환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천도교인 · 독립운동가.
이칭
택암(澤菴)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64년(고종 1)
사망 연도
1936년 8월 19일
본관
나주(羅州)
출생지
평안남도 성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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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천도교인 ·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나주(羅州). 호는 봉암(逢菴). 평안남도 성천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23세 때 동학에 가담하여 나인협(羅仁協)과 함께 동학농민운동에 참가하였다. 1919년 2월 천도교의 기도회 종료보고와 국장참배를 위해 상경, 손병희(孫秉熙)·권동진(權東鎭)·오세창(吳世昌) 등을 만나 3·1독립만세운동 계획을 듣고, 그에 찬동하여 민족대표로서 서명할 것을 동의하였다.

이 달 27일 최린(崔麟)·오세창·임예환(林禮煥)·나인협·홍기조(洪基兆)·김완규(金完圭)·권병덕(權秉悳)·홍병기(洪秉箕)·박준승(朴準承)·양한묵(梁漢默) 등의 동지와 함께, 김상규(金相奎)의 집에 모여서 독립선언서와 기타 문서의 초안을 검토하였으며, 그들과 함께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서 성명을 열기하고 날인하였다.

3월 1일 오후 2시경 인사동에 있는 태화관에 민족대표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여 만세삼창을 외치고, 일본경찰에 스스로 붙들리어 2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독립운동사자료집』 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3·1운동비사』(이병헌, 시사시보사, 1959)
『고등경찰요사(高等警察要史)』(경상북도경찰부,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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