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독무덤·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개설
발굴조사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다니이〔谷井濟一〕와 아리미쓰〔有光敎一〕에 의해 실시되었다. 광복 후에는 1978년 5월부터 최몽룡(崔夢龍)에 의해 모두 3차례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이 고분군은 아리미쓰의 실측도에 의하면 본래 12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개간 등으로 일부가 사라지고 제1∼4호분, 제7∼9호분 등 모두 7기가 남아 있으며, 제4·8·9호분 3기만 발굴조사되었다.
이 고분군은 본래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2011년 7월 28일에 인접한 고분군과 통합되어 사적 ‘나주 반남고분군’으로 재지정되었다.
내용
이것은 봉토(封土)를 가진 원분(圓墳)으로 추정되며, 돌방은 두께 8㎝ 정도의 판석(板石) 21매로 된 백제 말기의 납작천장식〔平天障式〕으로 밝혀졌다. 장축방향은 남북이고, 남쪽으로 널길〔羨道〕이 나 있다.
크기는 널방이 길이 218㎝, 너비 100㎝, 높이 103㎝이고, 널길은 길이 128㎝, 너비 103㎝, 높이 89㎝이다. 바닥에 길이 214㎝, 너비 75㎝, 두께 8㎝의 장방형 판석을 동쪽에 치우치게 깔아놓았다. 널방과 널길 사이에 1장의 문짝〔門扉〕이 있고 널길 입구는 2장의 판석으로 막았다.
돌방의 특징은 배수시설 없이 널방 바닥에 가는 모래가 섞인 황색 점토를 깔고, 돌방 주위에 누수방지를 위해 회색 점토를 발라서 배수시설과 같은 효과를 낸 것이다. 출토된 유물은 긴목항아리〔長頸壺〕·바리모양토기〔鉢形土器〕·은장도조각·금실〔金絲〕·쇠못〔鐵釘〕·철고리·사람뼈조각 등이 있다.
제8호분은 대안리 입구 왼쪽 구릉, 즉 제5호분 건너편에 있어, 제9호분과는 도랑〔湟〕을 사이에 두고 있다. 이 고분은 다니이에 의해 발굴되었다. 봉분형태는 절두방대형분(截頭方臺形墳)으로, 크기는 긴 변 10m, 짧은 변 9m, 높이 1.5m이다. 봉토 안에서는 4개의 독〔甕棺〕이 북침(北枕)으로 있었고, 잔(盞)과 작은옥〔小玉〕이 출토되었다.
제9호분도 다니이에 의해 발굴되었는데, 이 고분은 대안리고분군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주위에 도랑이 있는 절두방대형분이다. 크기는 긴 변 39m, 짧은 변 31m, 높이 5.1m이다. 서침(西枕)이 4기, 북침이 4기, 머리방향〔枕向〕을 알 수 없는 1기 등 모두 9기의 독이 출토되었다.
출토유물은 을관(乙棺)에서 마구(馬具)의 장식 꾸미개〔金具〕로 생각되는 길이 13.9㎝와 15.2㎝의 금동판금구 2점, 곱은옥〔匈玉〕3점, 대롱옥〔管玉〕1점, 유리소옥 2줄〔連〕등이 출토되었다.
또 경관(庚棺)에서 길이 3.3㎝, 너비 1.4㎝의 직호문녹각제도자병(直弧文鹿角製刀子柄) 1개, 구리팔찌〔銅釧〕3점, 곱은옥 3점, 대롱옥 14점, 구슬옥〔丸玉〕2점, 북옥〔臼玉〕294점, 금고리〔金環〕등이 출토되었다.
특징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고고학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 「나주 반남 고분군」(서성훈·성낙중, 국립광주박물관, 1988)
- 「영산강하류지역의 고분군」(이영문,『나주 대안리5호 백제석실분 발굴조사보고』, 나주군, 1978)
- 「나주반남면 대안리5호 백제석실분 발굴조사보고」(최몽룡·이청규·노혁진,『문화재』12, 1978)
- 「羅州郡潘南面古墳群」(穴澤和光·馬目順一,『古代學硏究』70, 1973)
- 「昭和十三年度古蹟調査報告」(朝鮮總督府, 1940)
- 「大正六年度古蹟調査報告」(朝鮮總督府,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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