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은 전체 51구로 되었으며, 3·4조 또는 4·4조의 형식이 주를 이루나 2·3조도 드물지 않다. 『청구영언』(大學本)과 가집 『잡가』·『교주가곡집(校註歌曲集)』 등에 수록되어 있다. 사본에 따라서는 「낙빈사(樂貧詞)」·「강촌사(江村辭)」·「강촌별곡(江村別曲)」 등으로 불린다.
작자에 대해 『청구영언』에서는 이황(李滉) 또는 이이(李珥)로, 『잡가』에는 이이로 되어 있으나, 이것은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지봉유설』·『순오지(旬五志)』 등에 이 작품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영조와 정조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작자는 이 작품에서 부귀공명을 버리고 산수에 파묻혀 빈한을 낙으로 삼아 세상일을 잊고 사는 생활의 풍미와 고절(高節)이 최상이라 하였다. 산천에서의 생활상과 풍경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면서 그 생활이 바로 태고적 생활이고, 허유(許由)·소보(巢父)의 삶과 같음을 읊었다.
자신이 이와 같이 사는 것은 사호(四皓)와 강태공(姜太公)·제갈량(諸葛亮) 등과 뜻이 같다고 노래하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또한 그와 같은 생활로 여생을 마치리라 노래하고 있다.
이 작품은 벼슬길에서 은퇴한 관료가 산수에 파묻혀 안빈낙도하는 생활을 읊은 것으로, 강호가도계열(江湖歌道系列)의 작품이다. 안빈낙도를 내용으로 하는 다른 가사들과 같이 가난을 낙으로 삼는 ‘낙빈(樂貧)’, 자연을 사랑하는 ‘요산수(樂山水)’, 분수를 지킨다는 ‘안분(安分)’의 세 가지 주지(主旨)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가사작품으로는 정극인(丁克仁)의 「상춘곡」, 차천로(車天輅)의 「강촌별곡」, 작자 미상의 「환산별곡(還山別曲)」·「강호사시가」·「창랑곡(滄浪曲)」 등이 있으며, 이것들은 사대부 사회에서 애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