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7년(영조 23) 평안병사 이일제(李日躋, 1683~1757)의 건의로 병영이 있었던 안주(安州)와 인근 100리 이내의 장정 중에서 건장한 자들을 뽑아 편성하였다. 그 규모는 2,000여 인으로 도내의 무술 시험인 도시(都試)에서 우수한 자는 변방의 장수[邊將]로 임용하였다.
본영에 24초(哨 : 중대), 우방어영에 6초, 별후영에 3초가 배정되었고, 각 초에는 난후사장이 임명되었다. 난후사의 군량미는 인근의 땅을 경작지로 개간한 둔전(屯田)에서 자급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