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1책. 석인본. 5대손 창진(昌鎭)과 회진(晦鎭) 등이 간행하였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회진의 발문이 있다.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권1·2에 시 71수, 초혼사(招魂辭) 2편, 소(疏) 1편, 서(書) 2편, 잡저 1편, 서(序) 1편, 지발(識跋) 5편, 상량문 7편, 축문 1편, 제문 10편, 행장 1편, 부록에는 가장(家狀)·묘갈명·묘지명 각 1편, 만사 18수, 제문 6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에는 「사친(思親)」·「강도육백리(江都六百里)」 등 효심을 표현한 것이 많다. 「서유행(西遊行)」은 1757년(영조 33) 가을에 춘당대(春塘臺)에서 치른 정시문과에 대한 것으로, 날짜, 응시한 사람의 수, 주위의 경관, 시관의 면모 등을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어, 당시의 과거제도를 살펴보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무신의소(戊申擬疏)」는 영남의 사림을 대표하여 올린 것으로,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평정하는 데 영남의 사민들이 많은 공을 세웠으나 논공행상에서 대부분 제외되었음을 지적하고, 그 시정을 요구한 글이다.
「여구강사림서(與龜江士林書)」는 구강의 사림에게 보낸 글로, 구강서원(龜江書院)을 이건하는 데 북부의 선비들은 뜻을 모았으나 다른 지방의 선비들이 합심하지 않는 까닭을 묻고, 대사를 위해 소아를 양보해줄 것을 청한 글이다.
「백운지비변(白雲池碑卞)」은 백운산 밑에 있는 비석에 대하여 김씨와 금씨(琴氏) 사이에 얽힌 사연을 적은 것이다. 그밖에 족보를 간행하면서 소감을 밝힌 「족보삼간서(族譜三刊序)」와 아들의 집을 지으면서 쓴 「학아신거상량문(學兒新居上樑文)」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