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하현(柳河縣)·반석현·화전현(樺甸縣) 등지의 11개 청년단체(新活·新興·拐子坑·復活·富太河·栗子淸·石咀·蛤마河·培新·同盤社·大岔靑年會) 대표 22명이 호란집창자(呼蘭集廠子)에 모여 1924년 11월 창립하였다.
창립대회에서 선출된 임원으로는 중앙집행위원은 이종림(李鍾林)·이석호(李石虎)·김강(金剛)·한진(韓震)·박병희(朴秉熙)·신명산(申明山)·손경호(孫京鎬)·허용(許湧)·이성택(李成澤)·이량(李良)·박정현(朴正賢), 상무집행위원은 김강·한진·이종림·박정현·손경호, 검사위원은 양호(楊虎)·이광국(李光國)·김양훈(金亮勳) 등이었다.
이 단체는 “모든 착취와 압박하에서 신음하며 자유와 생존권을 유린당한 우리들은 철저한 계급의식과 공고한 조직적 단결로써 청년운동을 통일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강령으로서 청년운동의 통일, 합리적 신사회 건설, 고려민족의 독립운동, 계급혁명에 헌신할 것 등을 내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