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병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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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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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함경도 북청(北靑)에 설치되었던 병마절도사영(兵馬節度使營).
이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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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병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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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함경도 북청(北靑)에 설치되었던 병마절도사영(兵馬節度使營).
내용

1466년(세조 12)에 처음 병마절도부사(兵馬節度副使)를 두었다가, 이듬해이시애(李施愛)의 난을 겪은 뒤 병영으로 승격되었다. 남도 병영 혹은 남병영으로 통칭되었고 주장(主將)을 남병사라 불렀는데, 수군절도사를 겸하였다.

함경도는 지역이 넓고 험하며 여진족과의 충돌이 잦아 3개소의 병영을 두었던바, 하나는 감영에서 겸하고 또 하나(북병영)는 경성(鏡城)에 두었다. 남병영의 관할구역은 갑산·안변·삼수·혜산·낭성포(浪城浦)·도안포(道安浦)·영흥·북청·단천·장진·원주(原州) 등이었고 그 이북은 북병영에 속하였다. →북병영

참고문헌

『세조실록(世祖實錄)』
『경국대전(經國大典)』
『대전회통(大典會通)』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역주경국대전(譯註經國大典)』-주석편-(한우근 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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