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병영

  • 역사
  • 제도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시대 함경도 북청(北靑)에 설치되었던 병마절도사영(兵馬節度使營).
이칭
  • 이칭남도병영
제도/관청
  • 설치 시기1467년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영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5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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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함경도 북청(北靑)에 설치되었던 병마절도사영(兵馬節度使營).

내용

1466년(세조 12)에 처음 병마절도부사(兵馬節度副使)를 두었다가, 이듬해이시애(李施愛)의 난을 겪은 뒤 병영으로 승격되었다. 남도 병영 혹은 남병영으로 통칭되었고 주장(主將)을 남병사라 불렀는데, 수군절도사를 겸하였다.

함경도는 지역이 넓고 험하며 여진족과의 충돌이 잦아 3개소의 병영을 두었던바, 하나는 감영에서 겸하고 또 하나(북병영)는 경성(鏡城)에 두었다. 남병영의 관할구역은 갑산 · 안변 · 삼수 · 혜산 · 낭성포(浪城浦) · 도안포(道安浦) · 영흥 · 북청 · 단천 · 장진 · 원주(原州) 등이었고 그 이북은 북병영에 속하였다. →북병영

참고문헌

  • - 『세조실록(世祖實錄)』

  • - 『경국대전(經國大典)』

  • - 『대전회통(大典會通)』

  •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 『역주경국대전(譯註經國大典)』-주석편-(한우근 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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