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동면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돌덧널무덤·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개설
그동안 두락리 일대의 산지에서는 돌덧널무덤[石槨墓] · 독무덤[甕棺墓] 등이 발견된 예가 있다. 이곳에서 출토된 토기 · 철기 400 여점이 인근 주민에 의해서 수집되어 전북대학교 박물관 등에 보관되어 있다.
내용
두락리 제2호분은 굴식돌방무덤으로 능선 하단부에서 발견되었다. 널방의 규모는 길이 약 3m, 너비 약 2.4m로 네모모양에 가까운 장방형에 속하며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높이가 2.8m 가량된다. 널길은 서벽 좌측으로 편재하여 내었는데 길이 3.5m, 폭 1.0m 정도이다.
천정은 네 벽이 활모양[穹窿像]으로 굽어 올라가서 뚜껑돌 하나로 천장을 덮은 형식이며 널방의 벽면에는 회를 발랐으나 벽화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았다. 널방의 형태는 기본적으로 백제식이라고 할 수 있고 익산 입점리 1호분이나 고령 고아동 벽화분과 유사하다.
수집된 유물로는 목항아리 · 항아리 · 굽다리접시 · 그릇받침 등 5∼6세기경의 가야계 토기와 낫 · 창 · 말재갈 · 갑옷조각 등의 철기가 있다. 1963년에 조사된 돌널은 김해식 와질의 대형항아리와 아가리가 약간 벌어진 둥근바닥항아리로 이루어진 것으로, 남북방향으로 안치되었다.
대형항아리는 길이 0.6m의 크기인데 어깨에는 톱니무늬가, 표면에는 두드림무늬가 있고, 2개의 젖꼭지모양의 손잡이가 달렸다. 이와 맞붙어 있는 둥근바닥항아리는 길이가 33㎝인데 목 아래쪽 전면에 돗자리무늬가 나 있다.
이 독무덤의 대형항아리 안에서는 문살무늬가 시문된 컵모양의 적색연질토기 1점이 출토되었다. 독무덤의 연대는 4세기경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 고분군에서 약 1㎞ 떨어진 월산리고분군은 1982년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고분의 내부구조와 껴묻거리[副葬品] 등의 성격이 확인되었다. 이 고분군과 형태 · 크기 및 입지가 비슷한 월산리고분군은 장방형 구덩식 대형돌방무덤으로서, 고령 지산동 등의 5∼6세기경의 가야계 고분과 같은 유형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출토된 유물은 기본적으로 가야계 토기를 주로 하며 철기류에서도 같은 양상을 보인다. 다만 껴묻은 위치에서는 지역성을 볼 수가 있으며 이러한 유물들에 의해 이 고분군의 조영 연대는 6세기 전반을 전후로 한 시기나 6세기 중반 이후로 추정된다.
이와 같은 대형 봉분이 같은 지역 내에 조밀하게 분포되어 있는데, 이것은 기본적으로 가야계 양식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지역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대가야와는 다른 토착집단에 의해 조성되었을 개연성을 상정할 수 있다.
참고문헌
- 『한국고고학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 「두락리 발굴조사보고서」(전북대학교 박물관, 1989)
- 「남원유곡리 및 두락리고분군」(전영래,『전북문화재대관』, 1978)
- 「전북지방출토옹관2례」(전영래,『전북유적조사보고』1,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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