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6월 23일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소백산맥에서 뻗어내린 구릉상에 있는 이 고분들의 분구(墳丘)는 지름 15∼16m, 높이 3∼4m 크기의 원형 봉분으로서 20여 기가 있으나, 모두 개간 · 도굴 등으로 파괴되었다.
그동안 두락리 일대의 산지에서는 돌덧널무덤[石槨墓] · 독무덤[甕棺墓] 등이 발견된 예가 있다. 이곳에서 출토된 토기 · 철기 400 여점이 인근 주민에 의해서 수집되어 전북대학교 박물관 등에 보관되어 있다.
두락리고분군은 1989년 7월부터 같은 해 9월까지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조사된 바 있다. 이 고분군 가운데 제1호분은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으로 긴축이 19m 정도되는 타원형의 봉토 안에 매장시설로서 하나의 대형 돌덧널이 축조된 외덧널식[單槨式] 고분이다. 돌덧널은 대가야지역의 것과 마찬가지로 평면형이 매우 세장한 형태이고 깬돌을 이용하여 길이 8m, 너비 1.3m, 깊이 1.8m의 규모로 축조하였다. 돌덧널의 네 벽은 수직벽으로 정연하게 축조되었으며 납작한 장대석 17매로 뚜껑을 덮었다.
두락리 제2호분은 굴식돌방무덤으로 능선 하단부에서 발견되었다. 널방의 규모는 길이 약 3m, 너비 약 2.4m로 네모모양에 가까운 장방형에 속하며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높이가 2.8m 가량된다. 널길은 서벽 좌측으로 편재하여 내었는데 길이 3.5m, 폭 1.0m 정도이다.
천정은 네 벽이 활모양[穹窿像]으로 굽어 올라가서 뚜껑돌 하나로 천장을 덮은 형식이며 널방의 벽면에는 회를 발랐으나 벽화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았다. 널방의 형태는 기본적으로 백제식이라고 할 수 있고 익산 입점리 1호분이나 고령 고아동 벽화분과 유사하다.
수집된 유물로는 목항아리 · 항아리 · 굽다리접시 · 그릇받침 등 5∼6세기경의 가야계 토기와 낫 · 창 · 말재갈 · 갑옷조각 등의 철기가 있다. 1963년에 조사된 돌널은 김해식 와질의 대형항아리와 아가리가 약간 벌어진 둥근바닥항아리로 이루어진 것으로, 남북방향으로 안치되었다.
대형항아리는 길이 0.6m의 크기인데 어깨에는 톱니무늬가, 표면에는 두드림무늬가 있고, 2개의 젖꼭지모양의 손잡이가 달렸다. 이와 맞붙어 있는 둥근바닥항아리는 길이가 33㎝인데 목 아래쪽 전면에 돗자리무늬가 나 있다.
이 독무덤의 대형항아리 안에서는 문살무늬가 시문된 컵모양의 적색연질토기 1점이 출토되었다. 독무덤의 연대는 4세기경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 고분군에서 약 1㎞ 떨어진 월산리고분군은 1982년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고분의 내부구조와 껴묻거리[副葬品] 등의 성격이 확인되었다. 이 고분군과 형태 · 크기 및 입지가 비슷한 월산리고분군은 장방형 구덩식 대형돌방무덤으로서, 고령 지산동 등의 5∼6세기경의 가야계 고분과 같은 유형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곡리 · 두락리고분군의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것은 이 고분군이 주로 가야계의 돌덧널무덤인데, 백제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굴식돌방무덤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특히 굴식돌방무덤에는 고령 고아동식처럼 회칠이 되어 있다. 봉분에서는 월산리고분군과 같은 양상으로 둘레돌[護石]이 없으며 바닥은 돌을 깔거나 진흙을 바르는 것이 보편적이나 제4호분 돌덧널무덤의 경우 바닥흙을 이용하였다.
출토된 유물은 기본적으로 가야계 토기를 주로 하며 철기류에서도 같은 양상을 보인다. 다만 껴묻은 위치에서는 지역성을 볼 수가 있으며 이러한 유물들에 의해 이 고분군의 조영 연대는 6세기 전반을 전후로 한 시기나 6세기 중반 이후로 추정된다.
이와 같은 대형 봉분이 같은 지역 내에 조밀하게 분포되어 있는데, 이것은 기본적으로 가야계 양식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지역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대가야와는 다른 토착집단에 의해 조성되었을 개연성을 상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