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후기, 서울을 방어하기 위해 남한산성 안에 둔 의승군의 승영.
설치 목적
기능과 역할
변천사항
『남북한의승방번변통절목(南北漢義僧防番變通節目)』에 의하면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에 거주하던 승려의 숫자는 707명이었다. 남한산성에는 경기도 승려 14명, 충청도 28명, 강원도 14명, 황해도 4명, 전라도 136명, 경상도 승려 160명 등 총 356명의 승려가 상주했다. 1750년 균역법(均役法)이 시행된 후인 1756년(영조 32)에는 일반 양역(良役)에 비해 승역의 부담이 커져 의승방번제를 폐지하였다. 대신 각지 사찰에서 고용전을 거두어 산성에 상주하는 승군에게 지급하는 의승방번전제(義僧防番錢制)로 바뀌었다. 당시 의승의 번전은 약 7,040량이었다. 병조에서 걷어들인 방번전을 수어청에서 도총섭에게 분할로 지급했다. 1785년(정조 9)에 잡역과 공물에 대한 부담으로 방번전을 내는 데 어려움이 크고, 승역을 지는 승려의 수가 줄어들었다는 이유로 방번전을 절반으로 삭감했다. 1894년 갑오개혁 때에 이르러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의 의승군과 도총섭에 대한 관례적인 제도가 폐지되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남북한의승방번변통절목(南北漢義僧防番變通節目)』
- 『남한지(南漢志)』
단행본
- 이능화, 『조선불교통사』(신문관, 1918)
논문
- 김갑주, 「정조대 남북한산성 의승방번전의 반감」 (『소헌남도영박사화갑기념사학논총』, 1984)
- 김용태, 「조선후기 남한산성의 조영과 승군의 활용」 (『한국 사상과 문화』 78, 2015)
- 우정상, 「남북한산성 의승방번전에 대하여」 (『불교학보』 1,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소, 1963)
인터넷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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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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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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