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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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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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북한산성의 승병(僧兵)으로 조직된 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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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 북한산성의 승병(僧兵)으로 조직된 군영.
내용

본래 승복(僧服)을 치의(緇衣)라고 한 데서 유래한다. 총융청(摠戎廳) 소속으로 본영을 북한산 등안봉(登岸峯)의 중흥사(重興寺)에 두고 산성 방어의 임무를 담당하였다.

편제는 처음 그 곳에 상주하는 승려로, 뒤에는 용주사(龍珠寺 : 수원) 승려를 윤차(輪差)로 임명하는 총섭승(摠攝僧) 1인, 중군승(中軍僧) 1인, 좌·우별장승(左右別將僧)·천총승(千摠僧)·파총승(把摠僧)·초관승(哨官僧) 등 유료장교승(有料將校僧) 47인과 72인의 유료승을 합해 372인의 승군으로 조직되었다.

그 외에도 당시 북한산성에 있던 태고사(太古寺)·중흥사·보국사(普國寺)·진국사(鎭國寺)·부왕사(扶旺寺)·국녕사(國寧寺)·보광사(普光寺)·원각사(元覺寺)·용암사(龍巖寺)·상운사(祥雲寺)·서암사(西巖寺) 등 11개 사찰에서도 각각 승장(僧將) 1인, 번승(番僧) 3인을 두어 지키도록 하였다.

이들 승군은 처음 현지의 승려로 충당했으나, 북한산성을 수축하던 숙종 때 이들만으로는 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평안·함경도를 제외한 6도의 승려를 의승(義僧)이라 하여 한달씩 교대로 상번(上番), 수직(守直)하게 하였다.

그러나 1754년(영조 30) 이성중(李誠中)이 상번 중 소요 경비를 스스로 부담하는 데 따른 폐단을 들어 징번(徵番)을 폐지할 것을 건의하였다.

이에 따라 1756년부터 징번을 폐지하고 방전(防錢) 혹은 의승번전(義僧番錢)이란 명목으로 10량(兩)씩 거두어 원거승(原居僧)을 고립(雇立 : 돈을 주고 다른 사람을 시켜 역을 대신하게 함)하는 경비로 충당하였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영조실록(英祖實錄)』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만기요람(萬機要覽)』
『조선시대(朝鮮時代) 군제(軍制) 연구(硏究)』(차문섭, 단국대학교출판부,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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