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금위취재

  • 역사
  • 제도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시대 무관 채용시험.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영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시대 무관 채용시험.

내용

정예근위부대의 하나였던 내금위의 군관을 선발하기 위한 시험이다. 병조에서 도총부·훈련원의 당상관 각 1인과 함께 시험을 보아 선발하였다. 내금위에 결원이 있을 때마다 수시로 행하였다.

시험과목은 목전(木箭)·철전(鐵箭)·기사(騎射)와 기창(騎槍)의 기술이었다. 활쏘기는 득점시수가 10발 이상이었으나, 이는 명중률을 기준한 것이 아니라 멀리쏘기의 능력으로 채점한 것이었다.

조선 후기에 내금위가 내삼청(內三廳)·금군청(禁軍廳)·용호영(龍虎營) 등으로 통합되면서 내금위취재도 금군취재로 개편되었는데, 1710년(숙종 36)부터 시행되었다. 금군취재는 내금위취재와 유사하였으나, 응시자의 신분 및 말의 헌납 여부에 따라 채점기준을 달리하였다.

내금위는 특수병종으로서 승진과 보수에서 여러가지 특혜가 있었고, 그 정예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이러한 선발시험이 있었다. 또 기존의 군사들도 연재(練才)라는 이름으로 봄·가을 2회씩 무예시험을 보아 기준미달자를 탈락시켰다. 그 시험과목과 채점방법은 취재와 같았다.

참고문헌

  • - 『경국대전』

  • - 『속대전』

  • - 『만기요람(萬機要覽)』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