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탕(內帑)이라고도 하였다.『세종실록』에 따르면 1423년(세종 5)을 전후하여 왕실 재산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내수소를 둔 것으로 보인다. 그뒤 1430년 종래 궁중의 특수물품을 조달하던 내수별좌(內需別坐)를 내수소로 개칭한 것으로 보아 이때 기구의 정비를 완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별도의 토지와 노비가 다수 배정되었는데, 특히 함경도에는 내수소 소속의 해척(海尺 : 해변어부)·응사(鷹師 : 매사냥꾼) 300호가 지정되어 있었다. 내수소는 그 사사로운 성격 때문에 관서라기보다는 하나의 궁방과 같이 취급되었다. 그 뒤 1466년(세조 12) 관제를 개정할 때 내수사(內需司)로 개칭되었다. →내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