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고산 독재동 추사 필적 암각문
늙다 [로] 어른 [로]
부수 老 총획 6
시어머니 [고] 고모 [고]
부수 女 총획 8
성 [산] 역 이름 [산]
부수 山 총획 3
두텁다 [독]
부수 竹 총획 16
재주 [재] 힘 [재]
부수 手 총획 3
빨리 흐르다 [동] 깊다 [동] 밝다 [통] 환하다 [통]
부수 水 총획 9
이루다 [추] 곡식익다 [추]
부수 禾 총획 9
사기 [사] 역사 [사]
부수 口 총획 5
붓 [필] 별 이름 [필]
부수 竹 총획 12
좇다 [적] 멈추다 [적]
부수 足 총획 18
바위 [암]
부수 山 총획 8
새기다 [각] 베다 [각]
부수 刀 총획 8
글월 [문] 무늬 [문]
부수 文 총획 4
- 예술·체육
- 작품
- 조선 후기
- 시도자연유산
- 지정기관경기도
- 명칭 노고산독재동추사필적암각문 (老姑山篤才洞秋史筆蹟岩刻文)
- 분류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석각류
- 종목 시도기념물(1987년 02월 12일 지정)
- 소재지 경기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 산65번지
- 집필 1995년
- 이완우 (원광대학교, 미술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노고산 독재동 추사 필적 암각문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있는 조선후기 서예가 추사 김정희 외 다수의 암각문.
내용
우선 “미수선생장리지소(眉叟先生杖履之所)”라는 해서 필적은 조선 중기의 유학자 미수허목(許穆, 1595∼1682)이 1658년 이곳 독재동을 다녀가면서 새겨졌다고 보인다. 그 좌우에 “李時善□”과 “壬戌·篤才洞·記言始得”이란 미수 풍의 전서가 있어 제자 이시선(李時善, 1625∼1715)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또 다른 암반에는 가로로 “몽재(夢齋)”라는 웅건한 필세의 행서가 있는데(세로 약 50㎝), 말미에 “秋史”라 새겨져 있어 조선 후기의 유명한 문인서예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필적임을 알 수 있다. “몽재”가 누구의 호인지는 미상이며, 그 아래쪽에 새겨진 “甲子·庚午·戊戌·甲寅”이란 간지도 무엇을 뜻하는지 미상이다. 이곳에 김정희의 필적이 남겨진 연유는 확인되지 않지만, 혹 그가 1816년(순조 16)과 이듬해 진흥왕순수비(眞興王巡狩碑)를 살펴보고자 북한산에 두 차례 갔을 즈음에 이곳에 들리지 않았을까 추측될 뿐이다.
이밖에 해서로 쓰인 “독재동(篤才洞), 유마폭(流磨瀑), 만의와(萬懿窩), 충서근(忠恕勤), 예서로 쓰인 가탁천(可濯泉)” 등 필치가 다른 암각서가 있는데 누가 썼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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