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4년(정조 18) 임적의 아들 정주(靖周)가 간행하였다.
4권 2책. 목판본. 규장각 도서에 있다.
권1은 시, 권2는 서(書)·서(序)·기·제발(題跋)·설·전(傳)·논, 권3은 잡저·제문, 권4는 신첩(申牒)·책(策)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는 오언·칠언의 율시(律詩)와 절구(絶句)이고, 이종형 홍태유(洪泰猷)와 증답(贈答)·차화(次和)한 것이 상당수에 달하며, 대체로 깨끗하고 여유로운 느낌을 준다. 저자는 관직에 나서기는 했으나 자연에 뜻을 두고 있었으므로, 향리와 초당을 읊은 시도 적지 않다. 그리고 저자의 감개(感慨)가 나타나 있는 시도 없지 않으니 저자가 함흥판관으로 부임하는 도중에 지은 「도중서회(途中書懷)」가 그 일례이다.
서(書)는 홍태유에게 보낸 2편뿐이다. 문장은 서(書)·서(序)·기와 설·논 등 각 체(體)를 통해 대체로 구성이 엄연하고 대구(對句)와 산구(散句)를 조절하고, 조사의 운용을 묘하게 해 명랑한 절주(節奏)가 있다. 산수의 경치를 감상하기 좋아했던 만큼 저자의 기행문은 실물을 보듯이 생동감 넘치게 경관을 표현하고 있다.
「금릉도기(金陵圖記)」는 중국 남경의 지리와 역사에 대하여 쓴 글로, 저자가 박지무(朴枝茂)를 시켜 「금릉도」를 확대·모사하게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과거설(科擧說)」은 요행을 바라는 과거에 대한 세정을 비판하고, 과거의 폐단을 논한 것으로 주목할 만한 글이다.
「축성의(築城議)」는 당시 강도(江都)에 내성을 구축하여 비상시에 대비하자는 계책을 비판한 것으로,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국가를 견고히 하며 미래의 근심을 방지하려면 붕당을 없애는 데 있지, 성을 쌓는 데 있지 아니하다.”라고 결론을 내고 있다. 「허설전(許卨傳)」은 주색을 좋아하는 거부가 재산을 탕진해 걸인으로 유락했다는 내용으로 일종의 경계를 위한 글이다.
잡저 가운데 「동유일기(東遊日記)」는 1709년 9월 초하루에 출발해 16일 동안 강원도의 홍천·인제 일대의 명산대찰을 유람한 일기이다. 「표인문답(漂人問答)」은 표착한 복건상인(福建商人)을 신문한 기록으로, 신문한 내용은 복건의 문물과 청조의 제도·형법·문학 등을 비롯해 민생, 도리(道里)의 원근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