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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나방과에 속하는 누에나방의 유충.
내용 요약

누에는 누에나방과에 속하는 누에나방의 유충이다. 한자어로는 잠(蠶)이라고도 하고, 누에똥을 잠사(蠶砂)라고 한다. 몸통은 원통형이며, 몸색깔은 젖빛을 띠는데 연한 키틴질로 된 껍질로 덮여 있다. 견직물의 원료인 고치실을 얻기 위해 누에를 쳤다. 삼한과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역대 임금은 누에를 치는 것을 장려하여 잠업을 발전시켰다. 조선시대에는 『잠서언해』, 『규합총서』, 『잠상집요』, 『잠상촬요』 등을 간행하여 양잠 기술을 전파했다. 잠업은 옷감 생산을 하는 농가의 부업으로 시작됐지만 점차 외화획득의 주요 산업으로 육성되고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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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누에나방과에 속하는 누에나방의 유충.
내용

한자어로는 잠(蠶) · 천충(天蟲) · 마두랑(馬頭娘)이라 하였다. 누에는 오래 전부터 길러왔기 때문에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를 묘(䖢), 아직 검은 털을 벗지 못한 새끼를 의자(蟻子), 세번째 잠자는 것을 삼유(三幼), 27일 된 것을 잠로(蠶老), 늙은 것을 홍잠(紅蠶), 번데기를 용(蛹), 성체를 아(蛾), 고치를 견(繭), 누에똥을 잠사(蠶砂)라 하였다.

누에는 몸통이 원통형이며, 머리 · 가슴 · 배의 세 부분으로 구별된다. 몸은 배자(胚子:동물이 태나 알에서 발생하여 아직 밖으로 나오지 않은 상태)시에는 14마디로 되어 있으나, 배자발생 도중에 제13마디가 작아져서 제14마디와 융합되어 1마디 모양으로 되기 때문에 결국 13마디로 계산한다. 가슴마디에 3쌍의 다리가 있고 배마디에 4쌍의 다리가 있으며, 제11마디 등쪽에 미각(尾角)이 있다.

몸색깔은 젖빛을 띠고 연한 키틴질로 된 껍질로 덮여서 부드러운 감촉을 준다. 누에는 알에서 부화되어 나왔을 때 크기가 3㎜ 정도로 털이 많고 검은색 빛깔 때문에 털누에 또는 개미누에라고도 한다.

개미누에는 뽕잎을 먹으면서 성장, 4령잠을 자고 5령이 되면 급속하게 자라 8㎝ 정도가 되어 개미누에의 약 8,000∼1만 배가 된다. 5령 말까지의 유충기간일수는 품종이나 환경에 따라 일정하지 않으나 보통 20일 내외이다.

5령 말이 되면 뽕먹기를 멈추고 고치를 짓는데, 약 60시간에 걸쳐 2.5g 정도의 고치를 만든다. 한 개의 고치에서 풀려나오는 실의 길이는 1,200∼1,500m가 된다. 고치를 짓고 나서 약 70시간이 지나면 고치 속에서 번데기가 되며, 그 뒤 12∼16일이 지나면 나방이 된다.

고치 속의 나방은 알칼리성 용액을 토해내어 고치의 한 쪽을 적셔 부드럽게 하여 뚫고 나온다. 고치에서 나온 암수 누에나방은 교미를 하며 암나방은 약 500∼600개의 알을 낳고 죽는데, 누에나방은 입이 퇴화되어 전혀 먹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누에를 치기 시작한 것은 언제인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중국에서부터 들어온 것은 틀림없는 사실로서, 기록에 따르면 주(周)나라의 기자(箕子)가 조선으로 옮겨와서 기자조선을 세울 때 기자에 의하여 전래되었다고 한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교기민이예의전잠직작(敎其民以禮儀田蠶織作)”이라고 기재된 것으로 미루어보아 지금으로부터 3천여 년 전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 뒤 삼한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역대 임금이 장려, 발전시켰으며, 조선시대에는 태종 11년에 후비친잠(后妃親蠶)의 예법을 제정하여 역대 왕후가 궁중에서 누에를 치게 하였고, 세조 1년에는 종상법(種桑法)을 제정, 공포하여 대호(大戶)에는 300그루, 중호(中戶)에는 200그루, 소호(小戶)에는 100그루, 빈호(貧戶)에는 50그루씩 심게 하고, 뽕나무를 잘못 가꾸어 말라죽게 한 농가는 벌을 주기까지 하였다.

또, 양잠에 관계된 서적도 간행하여 양잠기술을 전파시켰다. 세종 때에는 언해된 농잠서(農蠶書)가 있었다고 하며, 중종 때는 김안국(金安國)이 『잠서언해』를 저술하였고, 고종 연간에는 『잠상집요(蠶桑輯要)』 · 『잠상촬요(蠶桑撮要)』 등을 간행하였다.

『규합총서』에도 누에치기와 뽕기르기 항목이 있어 누에치기 좋은 날과 꺼리는 날, 누에 내고 미역 감기기 좋은 날, 누에가 꺼리는 것, 누에 미역 감기는 법 등을 기술하고, 고치의 감별법과 누에치는 법도 소개하였으며, 누에를 이용한 상처의 치료법도 기록하였다.

우리나라의 잠업은 제2차세계대전과 광복 후의 정국혼란 및 6 · 25전쟁으로 인하여 쇠퇴하다가 1953년부터 강력한 장려시책으로 뽕밭 면적은 늘었으나 고치생산량은 늘지 않았다.

5 · 16군사정부의 경제개발5개년계획과 1962년을 기점으로 하는 제1차 잠업증산5개년계획(1962∼1966)으로 성과를 거두었고, 제2차 잠업증산5개년계획(1967∼1971)을 과감하게 추진한 결과 잠업면모를 일신하여 1972년 수출액이 1억 달러를 넘었다.

1980년에는 2억 4400만 달러 수출을 달성하였고, 1985년에는 2억 5600만 달러를 수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잠업은 농가의 부업으로 단순한 옷감 생산의 단계를 넘어 외화획득의 주요산업으로 육성, 발전하게 되어 잠업양가의 소득 증대와 국가경제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누에를 치는 목적은 견직물의 원료인 고치실을 얻는 데 있으나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부산물도 적지 않다. 누에똥[蠶糞 · 蠶砂]은 가축의 사료, 식물의 발근촉진제(發根促進劑), 녹색염료(綠色染料), 활성탄 제조 및 연필심 제조 등에 쓰이고, 제사과정에서 나오는 번데기는 사람이 먹기도 하고 가축과 양어의 사료, 고급비누원료 및 식용유의 원료로 쓰이기도 한다.

한방에서는 누에가 죽어서 마른 것[白殭蠶], 누에고치 번데기[蠶蛹子] · 두번째 기른 누에나방[原蠶蛾] · 누에똥, 누에알 낸 종이[蠶布紙], 풋고치[新綿] 등을 약으로 쓴다. 한편, 누에는 염가로 동시에 대량사육이 가능하여 유전의 실험과 생리실험동물로 학문연구와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참고문헌

『물명고(物名考)』
『규합총서(閨閤叢書)』
『동의보감』
『최신종합양잠학』(김현성, 선진문화사, 1986)
『농협연감』(윤근환, 농업협동조합중앙회, 1986)
『최신양잠』(농업전문대학교재편찬위원회, 교학연구사, 1985)
『한국방언사전』(최학근, 현문사,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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