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이승만(李承晩) 추종세력이 재미교포들의 통합단체인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산하 하와이지방총회를 해체하고 하와이대한인교민단을 설립한 데 이어, 1924년 9월에 로스앤젤레스에서, 12월에 뉴욕에서 각각 교민단이 조직되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교민단령(僑民團令)을 준수한다는 구실로 설립된 교민단은 구미위원부(歐美委員部)에 예속되어 이승만의 세력 부식을 후원하는 단체였다. 이 단체는 1924년 12월 10일 뉴욕에서 안정수·홍득수·이봉수·송세인·신성구·허정·이진일 등의 발기로 조직되었다.
설립 목적은 거류동포를 규합하여 친목을 증진하며, 정치적으로는 구미위원부의 사업을 후원하는 데 있었다. 이 시기에 들어 재미동포의 재정적 후원이 부족하여 이승만이 이끄는 구미위원부의 유지가 곤란하였으므로, 뉴욕교민들이 재정후원을 담당하고자 조직하게 된 것이다.
이 단체는 교회의 사교실을 회관으로 사용하였으며, 단원이 많을 때는 60여 명 정도, 적을 때는 30명 정도였다. 조직된 이후 10년 동안 유지되었고, 1935년에 해체되었다.
홍득수·이진일 등이 단장으로 활약하였으며, 뉴욕거류 한국인들의 사교 중심지 구실을 하였다. 광복 이전 미국에서 조직된 교민단체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유지된 조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