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창은 왕건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망명한 자들을 끌어모으고 갈초도(葛草島)에 있는 반란군과도 연관을 맺어 준비하고 있었다. 왕건은 이를 알고 싸우기 전에 미리 아무도 모르게 물에 익숙한 자 십여 명을 갈초도 나루터로 보내 능창을 사로잡았다.
왕건은 능창을 궁예에게 보냈다. 궁예는 능창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말하길, “해적들이 다 너를 추대하여 두령으로 하였지만, 지금은 나의 포로가 되었으니 어찌 나의 계책이 신기하지 않느냐?” 하고 사람들에게 보이고 그를 죽였다.
왕건이 능창을 제거한 때는 『고려사』에 909년부터 912년 사이로 나온다. 정확한 연대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909년으로 보거나, 능창 기록에 바로 이어서 913년 기록이 나오고 덕진포 전투 이후에 벌어진 사건으로 추정하여 912년 기록으로 보기도 한다. 능창이 제거된 이후 서남해안은 후고려 궁예의 세력권에 들어갔고, 왕건의 위치도 확고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