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주바시 투탄 의거 ( )

근대사
사건
1924년 의열단원(義烈團員)인 김지섭(金祉燮)이 일본 천황을 살해할 목적으로 일본 궁성을 습격, 투탄한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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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24년 의열단원(義烈團員)인 김지섭(金祉燮)이 일본 천황을 살해할 목적으로 일본 궁성을 습격, 투탄한 의거.
역사적 배경

1923년 9월일본 동경 지방을 휩쓴 관동대지진 당시 수많은 한국인이 일본의 군·관·민에 의해 학살당하자, 의열단이 결사 단원을 일본에 파견하여 일제의 주요 기관을 파괴하고 요인들을 암살하고자 하였다.

이때 실행 대원으로 선임된 김지섭은, 그 해 12월 단장 김원봉(金元鳳)으로부터 밀령을 받은 즉시 일본인으로 가장하고 배편으로 일본에 도착하였다. 1924년 1월 3일 열차편으로 동경에 잠입한 그는 먼저 거사 목표를 일본 제국의회(帝國議會)로 잡았다.

경과와 결과

제국의회가 개회되는 때에 맞추어 회의장에 투탄함으로써 일제 요인을 일거에 폭살시키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때 제국의회가 휴회중이었는데다가, 여비가 떨어지고 신변의 위험이 점차 급박해지는 상황에서, 무작정 의회가 개회될 때를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거사 대상을 일본 궁성의 천황을 폭살하는 쪽으로 목표를 수정하였다. 이에 앞서 그는 일본 궁성 주변을 내왕하며 동정을 살폈다. 그러나 그의 거동을 수상히 여긴 일본 궁성 경비 경찰의 불심검문을 당하자,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었다고 판단하고 경찰을 쓰러뜨린 뒤 폭탄 1개를 던졌다.

그리고 일본 궁성으로 들어가는 다리인 이중교를 뛰어 건너가며 다시 1개의 폭탄을 위병들을 향하여 던졌다. 당초에는 이중교를 폭파하고 소란한 틈을 이용하여 황궁내에 들어가 천황을 죽일 계획이었다. 그러나 두 발의 폭탄이 모두 불발됨으로써 실패하고 말았다.

그는 위병에게 잡힌 뒤, 일본 경찰의 혹독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자기가 사용한 폭탄이 여러 차례의 실험을 통한 강력한 폭발력의 정상적인 폭탄이었음을 주장하였다. 불발된 원인에 대해 오랫동안 배를 타고 오는 도중에 습기가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진술하였다.

1925년 동경공소원(東京控訴院)에서 무기징역을 언도받았으며, 옥중에서 단식투쟁을 전개하며 계속 항거하다가 1925년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의의와 평가

의거는 일본인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신성불가침의 존재인 천황에 대하여 폭살을 기도하였다는 데에서 경악하게 하였다. 그리고 우리 민족에게는 한국 침략의 원흉인 천황을 죽이려 하였다는 데 큰 쾌감과 긍지를 느끼게 하였다.

참고문헌

『독립운동사』 7(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한국독립운동사(韓國獨立運動史)』 3(국사편찬위원회, 1967)
『동아일보(東亞日報)』(1924.1.7)
집필자
신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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